옥상 정원에 허브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글리쉬 라벤더, 스피아민트, 유칼립투스, 레몬 버베나.... 우리 부부에게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보살피기 시작했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실험도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재배한 허브로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 첫번째 목적이긴 했지만, 식물을 재배하는 것 그 자체가 우리 부부의 로망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옥상에 이미 화분을 잔득 만들어 키우고 계십니다. 그동안 저는 어머니께서 만들어 놓으신 정원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옥상에서 작물을 재배하려면 6층까지 흙과 비료를 날라 화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허리가 안좋으신 어머니께서 무거운 것을 나르실 수 없기 때문에 흙과 비료나르기는 제 몫입니다. 디자인 일로 바쁘기도 하고, 제 앞가림이 바쁘다보면 어머니께서 벌여놓으신 일이 못마땅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사는 곳을 시골로 옮겨 땅이 있는 곳에 허브 식물들을 심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땅이 있는 시골로 내려가서 식물들을 키우고, 강아지들도 개답게 풀어 키우고 싶었습니다. 도시의 척박한 환경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겨울 아내와 함께 어머니가 계신 건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첫 봄을 맞이한 아내는 옥상 화분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화분 정원에서 상추, 부추, 시금치, 고추 등등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을 키우시고 계신데, 아내는 봄부터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작물들을 돌봐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언제나 현명합니다. 자연과 함께 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야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내는 주어진 환경에서 시작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하더니 금새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의 허브를 키워보자고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최선의 방향을 찾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자연의 방식이고, 그 방법으로 지구라는 별은 생명이 가득한 녹색 별이 되었습니다. 허브를 키우자는 아내의 말에 경외감이 들어 바로 "그래 당장 양재동 꽃시장에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우리가 입양한 허브들입니다.
Diane Ackerman의 The Human Age에서 [환경 화해-Reconciliation Ecology]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척박한 도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종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종의 세균과 바이러스들, 몇 종 되지 않는 식물들을 제외하면 인간들이 가축화 시킨 동물들과 외부에서 유입된 조류 몇 종, 바퀴벌래, 파리, 막시류의 개미 몇 종이 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옥상에 정원을 만들고 담을 허물어 나무와 꽃을 심으면 그 곳으로 다시 벌들과 나비 더 많은 종의 새들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인간구역에서 쫓겨난 생명체들을 다시 불러들이다 보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들이 많아지고 우리가 사는 지구별을 다른 생명체들과 조금 더 많이 공유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아마 이것이 쾌적하지만은 않을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밖에 널어놓은 말린 고기를 족제비가 물고간다면 좋을 리 없겠죠. 모기도 많아질 것이고요.
어머니께서 만드신 옥상 정원엔 벌써 새들이 잔득 몰립니다. 아침이 되면 도시 한 복판에 새소리가 시끌시끌 합니다. 어머니께서 시금치 씨를 새들이 다 쪼아먹었다고 불평하십니다. 성철스님이셨던가요? 밭을 가꾸는데 새들이 다 쪼아 먹으니 밭을 하나 더 만들어 새가 쪼아먹는 밭과 스님이 수확하실 밭 두 개를 만들었다죠? 어머니께 그 이야기를 해드리려다 참았습니다.
오늘 아침 따온 허브들로 세안 후 컨디셔너를 만들었습니다. 피부 세정제는 거의 모두가 알칼리인데, 피부는 약산성에서 제일 건강합니다. 세안 후 헹굼물에 식초를 몇 방을 떨어뜨리면 좋은데, 식초 향이 그닥 쾌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허브 식초를 쓰면 향도 좋고 피부 건강도 챙길 수 있습니다. 직접 따온 허브들로 컨디셔너를 만들었습니다. 싱싱한 허브들로 식초를 담그니 향이 진합니다. 아내는 허브 식초를 물에 조금 타서 마십니다. 컨디셔너용으로 만든 식초가 향이 너무 좋다며 식초 음료를 만듭니다. 자연은 참 대단합니다. 아내 역시 대단합니다. 아내는 자연을 닮았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