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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개발논리? 그럼 2018년도는?

작년 6월, 작업실 이사 뒤 영등포구 양평동은 개발의 붐이 일고 있습니다. 양평동 주변에 공사하는 곳이 잔득 들어서고, 금년 초에는 옆집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기 시작해 지금은 붉은 벽돌건물로 거의 완성 되었습니다. 앞 집, 대각선 뒷집, 작업실 들어오는 골목집, 작업실 주변에서 보이는 건설현장만 해도 예닐곱 군데가 넘습니다. 급기야 뒷 집 두 채를 허물어 큰 건물 한 채로 짓는다고 하는군요. 뒷 집은 건축하는데에 문제가 많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들어오는 단 한 곳의 입구가 저렇게 좁습니다. 1.5톤 트럭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다니기 힘들고, 포크레인 한 대가 들어오면 사람들은 지나다닐 수 없습니다. 저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분, 운전 실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기를 들어오다니... 문제는 저 길을 통과해야 작업실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결국 영등포구청에 민원을 넣어야 했습니다. 저런 큰 기계가 들어오면 사람이 다닐 수도 없을 뿐 더러, 특수 건설 차량이 길을 막고 있으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사기업은 이윤을 위해 모든 것을 합니다. 하지만 국가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행정을 하면 안됩니다. 사람들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행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렇게 좁은 골목을 통해 건설을 하려면 사람들의 안전과 통행이 먼저 확보되어야 하고, 그것을 확인 한 후 건축 허가를 내주는 것이 행정의 단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번 민원을 넣으며 모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러한 일반 민원을 넣는 창구가 구청에는 없습니다. 그런 일반 민원은 인터넷을 통해 접수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접수하는 방법은 1. 인터넷 민원 페이지에 들어간 뒤 2.통합보안프로그램을 깔고, 3.브라우저를 껏다가 다시 켜고, 4. 민원페이지에 다시 들어가서, 5.휴대폰 인증창이 뜨고, 6. 인증 양식을 작성한 뒤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다 누르고 '다음'을 누르면 7. KT인증 앱을 깔라고 경고창이 뜨고, 8. KT인증 앱...

10월항쟁. 폭력으로 장악한 국가권력,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저항한 시민들의 이야기.

최초 국가의 탄생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잘 모르지만 평화적인 과정을 거쳐 합의한 뒤 국가라는 조직체로 진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의 말과 법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자 이제부터 내 말을 듣고 내가 하는 발이 곧 법이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아무런 거부 없이, "네 그러도록 하지요. ㅎㅎ"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국가 역시 평화적인 과정을 거쳐 탄생하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를 거친 한반도는 1945년 2차대전의 종식이 가져온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맞이합니다. 한반도 남쪽은 대한민국이 되고, 북쪽은 북조선 인민공화국이 됩니다. 남쪽에서는 미군정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이승만이 1948년 정부를 구성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하고, 북한은 그보다 한 해 전 1947년 USSR의 권력을 업은 김일성이 북조선 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웁니다. 해방 이후 약 2~3년의 공백을 거쳐 두 개의 국가가 한반도에 탄생합니다. 두 정부는 나름대로의 폭력성으로 한반도에 살아가던 시민들을 흡수합니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북조선에서는 지주들의 땅을 무상으로 몰수한 뒤 무상으로 분배하는 과정에서 지주들에게 행하여진 폭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지주들과 친일파들을 정부와 경찰권력으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이 이루어집니다. 이상하게도 국사를 배울 때 이 과정은 제일 뒷부분에 잠깐 나오고 끝납니다. 국사의 대부분은 한반도의 고대사로 채워져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세워졌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1919년 3.1운동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요?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일제의 점령을 부정하며 세워진 상해의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시초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해방 이후 보여준 폭력적인 권력쟁탈전을 알게되면 왜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이 고대사에 치중하게 되었는지 알게...

우리는 단기적 이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나?

"나 홀로 볼링" Bowling Alone이라는 표현은 이 책의 중간 즘 나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팀을 짜 볼링을 즐기며 이야기를 하며 개개인의 삶에 대해, 같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볼링 레인에서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자리에 앉아 천정에 달린 텔레비전을 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립니다. 예전처럼 사람들간의 대화가 길지 않고, 더불어 서로에게 관심도 줄어들며, 서로를 깊이 알지도 못하고, 결국 함께하는 삶에 대한 참여도는 떨어집니다. 이 책의 주제는 줄어드는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 "을 어떻게 다시 복구 시킬 것인가 입니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 개념을 확립시키고 실증적인 데이터로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 가장 깊이 있게 연구한 학자는 Robert David Putnam 이 아닌가 합니다. 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정독하였습니다. 어디까지나 미국의 데이터로 분석한 연구이긴 합니다만, 한국 사회에도 대입하여 통찰할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의 의미를 간단히 요약하면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은 사회 개혁가였던 Lyda Hanifan이 쓴 1916년 글에서 이미 잘 요약이 되어있으며, Jane Jacobs, Glenn Loury, Pierre Bourdieu, Ekkehart Schlicht, James Coleman등등...이 각각 다시 고안하거나 정리하였다. 사회적 자본은 한 사회 내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간의 호혜성, 신뢰, 참여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당신 아버님 장례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신은 내 아버님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어느 미국 코미디언의 말로 쉽게 이해할 수있다. 미국의 사회적 자본은 실제로 줄어들었는가? 그렇다. 줄어들었다. 투표 참여율, 마을 조직의 구성 ...

70년 역사의 영등포 공구상가. 생산성과 생산, 개발과 개선

70년 역사의 영등포 기계상가와 재래시장이 사라지고있습니다. 여기서 삶을 이루고 일터를 만들어 살고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쫓겨나겠지요. 저는 집에서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작업실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약 15Km정도 되는데, 아침 저녁 운동으로 딱 좋은 거리 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이곳을 지나게 됩니다. 어느날 지나다 보니 거리 위로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70년 재래시장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 현수막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착잡합니다. 이들은 또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이명박,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임할 무렵 동대문운동장과 청계천 주변을 재개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쫓겨났습니다. 먼저 이명박이 청계천을 개발하며 황학동 시장의 중고시장을 운영하던 분들을 동대문운동장에 밀어넣었습니다. 그곳에서 장사가 될 리 없었습니다. 황학동이라는 지역이 간직한 역사와 문화까지 동대문운동장에 밀어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황학동의 문화와 삶이 동대문운동장이라는 공간 안에 자리잡기에는 그곳의 환경은 척박했습니다. 결국 오세훈은 동대문운동장을 자하 하디드라는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맏겨 재개발하고, 그곳에서 삶을 위해 발버둥치던 사람들을 모두 밀어냅니다. 황학동에 상권을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의 생존권과 중고시장의 추억이 모두 이렇게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곳에는 "동대문 문화 역사공원"이라는 역사에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박근혜의 국정교과서를 보는 기분입니다. 세탁된 역사. 시각적인 미학이 진짜 역사를 세탁하는 공간. 이 사람들의 생존권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70년간 공업지대를 형성하던 이곳의 환경이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파괴되고 있다는 것은 생존권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입니다. 사람들은 겉모습 화려한 도시를 좋아합니다. 번듯한 건물들이 보도블럭 위로 솟아 올라 지저분해보이는 삶의 이면을 가려줄 수 있으면 세련된 도시 공간에 세련된 삶이 이루어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