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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기적 이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나?



"나 홀로 볼링" Bowling Alone이라는 표현은 이 책의 중간 즘 나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팀을 짜 볼링을 즐기며 이야기를 하며 개개인의 삶에 대해, 같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볼링 레인에서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자리에 앉아 천정에 달린 텔레비전을 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립니다. 예전처럼 사람들간의 대화가 길지 않고, 더불어 서로에게 관심도 줄어들며, 서로를 깊이 알지도 못하고, 결국 함께하는 삶에 대한 참여도는 떨어집니다.

이 책의 주제는 줄어드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어떻게 다시 복구 시킬 것인가 입니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 개념을 확립시키고 실증적인 데이터로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 가장 깊이 있게 연구한 학자는 Robert David Putnam 이 아닌가 합니다. 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정독하였습니다. 어디까지나 미국의 데이터로 분석한 연구이긴 합니다만, 한국 사회에도 대입하여 통찰할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의 의미를 간단히 요약하면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은 사회 개혁가였던 Lyda Hanifan이 쓴 1916년 글에서 이미 잘 요약이 되어있으며, Jane Jacobs, Glenn Loury, Pierre Bourdieu, Ekkehart Schlicht, James Coleman등등...이 각각 다시 고안하거나 정리하였다. 사회적 자본은 한 사회 내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간의 호혜성, 신뢰, 참여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당신 아버님 장례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신은 내 아버님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어느 미국 코미디언의 말로 쉽게 이해할 수있다.

미국의 사회적 자본은 실제로 줄어들었는가?
그렇다. 줄어들었다. 투표 참여율, 마을 조직의 구성 및 참여, 공직 출마, 지난 한달간 얼마나 많은 지인의 집을 방문하였는가, 편지쓰기 및 연락 횟수, 봉사활동, 기부, 종교활동 등 많은 지표를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 1900년대 초부터 1960년대까지는 꾸준하거나 오히려 늘어나던 지표들이 1960년대 이후 떨어지기 시작하여 1990년대이후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3분의 2가 사라졌다.

왜 사회적 자본은 줄어들었는가?
확실한 범인은 단정할 수 없지만 가장 큰 영향은 "TV 같이 혼자 넋놓고 바라보는 미디어의 대중보급 + 여성의 직업사회 진출로 인해 관계의 구심점 상실 + 거대 도시가 위성화 되면서 슬럼은 주민 이동이 잦아지고 위성 도시는 개인화 되어 이웃간의 교류가 적어짐" 으로 요약.

사회적 자본이 줄어들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신뢰가 무너지면서 합의하여 해결하기보다는 소송이 늘어남. 지역 사회에서 서로의 아이를 돌봐주는 호혜가 줄어들면서 교육의 질이 심각하게 나빠짐. 한 구성원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인적 연계사슬이 무너져 슬럼은 더욱 슬럼화 - 부자동네는 더욱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끼리 이용하게 됨. 개천에서 용나는 시기는 빠이~.

사회적 자본을 다시 재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지않다.

이러한 내용들로 채워진 이 책은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합니다. 간단한 예로, 오늘 아침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초등학교 시절  장인, 장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아내가 하교를 하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 한참 후에야 집에 돌아오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장모님께서는 큰 걱정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아내도 아내의 동생도 같은 건물에 있는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윗집에는 건물주의 자녀들이 있었는데, 아내보다 4~5세 가량 많았고, 아랫집에는 2~3살 어린 자녀를 둔 이웃이 세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내의 동생은 그들과 놀며 장모님께서 돌아오실때까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비용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가 될까요? 요즘 아이들은 맞벌이 부모가 돌아올때까지의 시간을 주로 보습학원에서 보냅니다. 보습학원의 비용만 계산하면 될까요? 보습학원에서 일어나는 계층간의 차별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따돌림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이들을 보습학원에 보내도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요즘 유아원에서는 크고 작은 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유아원 교사에 비해 원아들의 수가 많아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높은 탓도 있고, 유아원이 이윤추구에만 몰두하여 유아원이 추구하여야 할 보육의 질 향상이 일어나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이런 시설에 아이를 맏기고 일을 해야 하는 부모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전에는 이웃을 믿고 아이들이 함께 뛰어놀도록 해주면 해결되는 일들이 이제는 월 백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치르고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비용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은 분명 거대한 자본입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럽의 어느 사회학 연구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에서는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데에 들어가는 자본도 낮고, 거래도 활발하게 일어나며, 거래에 따르는 비용도 낮아 이윤이 높아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를들면 오랜 기간동안 서로 협업하며 사업을 이끌어가는 카메라 업체와 디지털 카메라의 기판을 콘트롤하는 IT업체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카메라업체는 오랜 기술이 축적된 노하우를 IT업체가 가지고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신뢰 합니다. 또한 그에 따르는 기술, 노동비용을 지불합니다. 계약은 경제사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양 회사가합리적인 비용과 이윤을 가져간다는 신뢰하에 쉽게 체결됩니다. 제품을 개발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함께 해결합니다. 또한 서로간의 기업의 비밀은 지켜진다는 신뢰가 있어 발생되는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좋은 제품이 개발되고 이윤 또한 높아집니다.

반대의 가정을 하겠습니다. 카메라 업체는 자신의 제품에 들어갈 IT업체를 가격경쟁시킵니다. 하지만 업체들의 포트폴리오를 믿을 수 없습니다. 싸게 일을 해줄 업체를 찾지만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서로의 일이 마무리 될 것이라는 자신이 없습니다. 결국 계약서를 공증하게 되며, 공증을 위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카메라회사는 제품 개발에 앞서 회사의 기술상 영업상 비밀이 노출 될 수 있어 함께 제품을 개발하기를 꺼리고, 그에 따라 제품 개발은 시간이 걸립니다. IT업체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기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따라서 작업의 완성도는 낮아지고 생산성은 떨어집니다. 양 회사는 모두 결과물을 확신할 수 없어 보험을 들며, 이 또한 비용입니다. 개발이 늦어지니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은 늘어나고 기회비용은 소진됩니다. 최종 제품이 개발되어도 그동안 들어간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또한 이윤도 줄어듭니다. 만일 프로젝트가 최악으로 흘러가면 서로에게 소송을 하게 됩니다. 소송 비용 또한 값싸지 않기 때문에 항상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 그 사회는 생산적인 곳에 써야 할 비용을 보험과 소송으로 낭비하게 되고, 비즈니스의 비용은 높아집니다.

사회적 자본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Putnam은 이해를 위해 사회적 자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자본주의는 어쩌면 신뢰를 바탕으로 생겨난 제도이고, 사회적 자본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제도입니다. 1998년 경제위기, 흔히들 IMF라고 부르는, 이후에 대한민국은 경쟁, 독점 자본주의의 최첨단까지 달려왔습니다. 대한민국은 효율성이라는 단기적 이익을 얻었을지 모르지만(이 마저도 의심이 갑니다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자본을 잃었습니다. 이 손실이 얼마나 큰지는 모릅니다. 제 주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수많은 얼굴에서 그 손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항상 걱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 마음속 깊이 쌓여있는 스트레스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손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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