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국가의 탄생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잘 모르지만 평화적인 과정을 거쳐 합의한 뒤 국가라는 조직체로 진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의 말과 법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자 이제부터 내 말을 듣고 내가 하는 발이 곧 법이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아무런 거부 없이, "네 그러도록 하지요. ㅎㅎ"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국가 역시 평화적인 과정을 거쳐 탄생하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를 거친 한반도는 1945년 2차대전의 종식이 가져온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맞이합니다. 한반도 남쪽은 대한민국이 되고, 북쪽은 북조선 인민공화국이 됩니다. 남쪽에서는 미군정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이승만이 1948년 정부를 구성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하고, 북한은 그보다 한 해 전 1947년 USSR의 권력을 업은 김일성이 북조선 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웁니다. 해방 이후 약 2~3년의 공백을 거쳐 두 개의 국가가 한반도에 탄생합니다. 두 정부는 나름대로의 폭력성으로 한반도에 살아가던 시민들을 흡수합니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북조선에서는 지주들의 땅을 무상으로 몰수한 뒤 무상으로 분배하는 과정에서 지주들에게 행하여진 폭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지주들과 친일파들을 정부와 경찰권력으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이 이루어집니다.
이상하게도 국사를 배울 때 이 과정은 제일 뒷부분에 잠깐 나오고 끝납니다. 국사의 대부분은 한반도의 고대사로 채워져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세워졌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1919년 3.1운동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요?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일제의 점령을 부정하며 세워진 상해의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시초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해방 이후 보여준 폭력적인 권력쟁탈전을 알게되면 왜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이 고대사에 치중하게 되었는지 알게됩니다.
이 책은 해방 이후 어렵게 생존해온 민중들이 1946년 10월 대구항쟁을 통해 조국 건설을 위해 무엇을 요구하였는지, 어떻게 빨치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조명합니다. 또한 현재까지 극우정당에서 주장하는 "빨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보여줍니다. 토지개혁으로 인해 북쪽에서 쫒겨 내려온 사람들이 서북청년단을 만들고, 이승만으로부터 권력을 얻은 뒤 총을 차고 민간인을 학살하게 되는 과정도 잠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학교에서 왜 국사를 배우지 못하고 한반도 고대사만 읍조리게 되는지에 대한 증언입니다.
요즘 대한민국 현대사(왜 대한민국 역사라고 하지 않고 현대사라고 하는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를 새롭게 조명하는 역사책들이 많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김득중씨의 [빨갱이의 탄생]과 이 책은 대한민국 역사 서술에 커다란 방향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랜드마크같은 책 입니다. 김상숙, 김득중, 서중석 등의 학자들은 그동안의 역사 서술이 보여주는 권력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민중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를 바꾸기 위해 교과서를 바꾸는 와중에도 이러한 역사책이 서술되었다는 것은 정권과 권력의 폭압이 진실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구미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도 전향을 거부하던 강용주씨의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기사가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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