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작업실 이사 뒤 영등포구 양평동은 개발의 붐이 일고 있습니다. 양평동 주변에 공사하는 곳이 잔득 들어서고, 금년 초에는 옆집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기 시작해 지금은 붉은 벽돌건물로 거의 완성 되었습니다. 앞 집, 대각선 뒷집, 작업실 들어오는 골목집, 작업실 주변에서 보이는 건설현장만 해도 예닐곱 군데가 넘습니다. 급기야 뒷 집 두 채를 허물어 큰 건물 한 채로 짓는다고 하는군요.
뒷 집은 건축하는데에 문제가 많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들어오는 단 한 곳의 입구가 저렇게 좁습니다. 1.5톤 트럭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다니기 힘들고, 포크레인 한 대가 들어오면 사람들은 지나다닐 수 없습니다. 저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분, 운전 실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기를 들어오다니... 문제는 저 길을 통과해야 작업실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결국 영등포구청에 민원을 넣어야 했습니다. 저런 큰 기계가 들어오면 사람이 다닐 수도 없을 뿐 더러, 특수 건설 차량이 길을 막고 있으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사기업은 이윤을 위해 모든 것을 합니다. 하지만 국가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행정을 하면 안됩니다. 사람들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행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렇게 좁은 골목을 통해 건설을 하려면 사람들의 안전과 통행이 먼저 확보되어야 하고, 그것을 확인 한 후 건축 허가를 내주는 것이 행정의 단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번 민원을 넣으며 모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러한 일반 민원을 넣는 창구가 구청에는 없습니다. 그런 일반 민원은 인터넷을 통해 접수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접수하는 방법은 1. 인터넷 민원 페이지에 들어간 뒤 2.통합보안프로그램을 깔고, 3.브라우저를 껏다가 다시 켜고, 4. 민원페이지에 다시 들어가서, 5.휴대폰 인증창이 뜨고, 6. 인증 양식을 작성한 뒤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다 누르고 '다음'을 누르면 7. KT인증 앱을 깔라고 경고창이 뜨고, 8. KT인증 앱은 어디서 까는지 알려주지 않고, 8. 저처럼 알뜰폰을 쓰면 KT에 아이디가 없어 깔 수 없고......
두 번째로 다시 구청에 가서 안내데스크에 사진을 보여주면서 민원을 넣지 않으면 자전거를 작업실에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니(벽과 포크레인 사이의 공간은 사람이 옆으로 게걸음으로 벽에 등을 붙이고 옷으로 벽을 닦고 다녀야 하는 공간) 건축과를 가보라고 하더군요. 건축과에는 건축 허가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 20분 정도를 기다리니 상담원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상담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상황을 설명하니 상담원이 저에게 공사를 진행하는데에 있어서의 지침 매뉴얼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건설을 진행하는데에 있어서....(중략) 통행에 방해가 될 경우 지역 주민들과 합의를 해야 하잖아요. 안전이 확보가 되어야 하고요....(중략) 지역 주민들과 상의를 거쳐서....(중략)..." 한 3분 정도 듣다가 말을 끊었습니다.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가 작업실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의 통행과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담당자는 "결과론적으로 건축은 이루어져야 하잖아요.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건축허가를 내줄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다시 매뉴얼 반복)..." "죄송합니다, 다시 말 끊어서. 제가 작업실에 들어갈 수 없고, 저렇게 좁은 골목에서 건설이 이루어지려면 그러한 상황에서 안전하게 건축할 수 있는 방법이 먼저 확보가 되고 건설이 진행.." 담당자는 담당자는 저의 말을 끊고 "제가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게 되네요.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일단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주시고...."
민원을 넣고 "결과론적으로 건축은 이루어져야 하잖아요."라는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한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 모두에게 이익을 나눠주는 행정은 그닥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지역 주민의 삶에 기본적인 안전과 통행을 지켜줄 수 있는 필수적인 행정은 충분히 있습니다. 이 정도의 기본적인 조건도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사업도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위험한 건설 방식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말은 법 안에 사람들의 안전은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결과론적으로 건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전형적인 70년대 개발논리입니다. '개발' 안에 누군가의 이익이 있고, 그 이익이 나라를,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개념은 있지만 생명에 대한 존중도, 안전한 삶에 대한 보장도 없습니다. '결과론적으로'라는 말이 사람들의 안전이야 어떻게되든, 과정이 어떻게 되던 건설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듯 합니다. 민원 담당자는 누구를 위해 안전도, 불편도 상관없이 건설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민원을 다루는 담당자의 태도는 매우 친절한 로봇같았습니다. 상명하복의 관료 문화에 잘 적응되어 민원을 넣는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말을 듣더라도 교육받은 대답을 하도록 훈련받은 태도랄까요? 담당자의 태도나 친절한 말투가 정말 놀라웠지만, 어떤 질문을 해도 똑같은 대답을 하는 것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행정은 아직 70년대 개발논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공무원들의 기본적인 교육은 그 논리를 친절하게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런 논리가 콘크리트처럼 공무원들에게 체화된 지금이 2018년 이라는 것입니다. 삶은 참으로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