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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osterone Rex, T-Rex. 남성성의 신화 위에 우뚝 선 차별이란 이름의 공룡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성을 만드는 홀몬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사춘기 이후 남성성의 발달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에 의해 발현되고, 여성성의 발달은 에스트로젠(Oestrogen, Estrogen)에 의해 발현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틀린말은 아닌데, 딱히 정확한 말도 아닙니다. 성징의 발현이 단순하게 하나의 홀몬에 의해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니, 생명체는 복잡한 존재여서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만들지 않고 언제나 복합적인 원인이 단계적 작용(cascade)을 통해 복합적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그 수많은 결과들이 모여 하나의 개체라는 특성을 만듭니다. 생물학은 물리학과는 달라서 "A가 B를 만든다"라는 생물학적 명제는 대부분 위험한 명제입니다. 생명체라는 복잡한 존재를 하나의 공식으로 환원시켜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코델리아 파인은 남성성이라고 불리는 모든 생물학적 특성에 해부용 메스를 대고 천천히 분해, 분석해나갑니다. 전체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세 개의 큰 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장, 과거는 성선택 및 남성성의 진화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론들이 과연 적절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시되었는지를 비판합니다. 두 번째 장, 현재에서는 남성 고유의 행동 및 심리가 과연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인지, 더 나아가 그것이 과연 남성만의 특성인지 까지도 비판합니다. 세 번째 장, 미래에서 저자는 성차별 및 성역할에 관한 자신의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첫 번재 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배이트먼(Angus Bateman)의 초파리 실험과 트리버스(Robert Trivers)의 수학적 계산이 완성시킨 다윈의 성선택이론을 재검토하며 남성은 타고난 바람둥이라는 널리 알려진 상식을 해부합니다.

배이트먼은 초파리 실험을 통해 수컷의 수정 성공율과 암컷의 수정율을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수컷의 21%가 후손을 낳는데 실패한 반면 암컷은 단 4%만 실패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능력있는 수컷이 후손을 많이 퍼뜨린다는 뜻입니다. 이 결과는 다윈의 성선택설과 잘 맞아들어갑니다. 포식자의 눈에 잘 띄도록 꼬리를 길게 진화시킨 공작새는 위험과 자원의 낭비에도 불구하고 암컷의 선택을 받기위해 긴 꼬리를 진화시킨 것입니다. 남자들이 쓸데 없이 비싸고 일반 도로에서 달리기에는 너무 빠르며 유지비가 많이드는 마세라티 스포츠카를 사는 이유가 여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는 이론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저자는 베이트먼이 단 6번의 실험으로 모든 사례를 대표하기에는 실험의 회수가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6번의 실험 중 자신의 이론에 유리한 데이터만 대표로 채택을 합니다. 다른 실험에서는 암컷의 생식율과 수컷의 생식율이 비슷하게 나왔는데도 말이지요.

값싼 정자를 가진 남성은 가능한한 많은 여성을 수정시키려고 하고, 제한된 난자와 비싼 양육 비용을 치러야 하는 여성은 여러 남자들 중 소수를 까다롭게 고르도록 진화하였을까요? 그래서 남자들은 바람을 피고 여자들은 돈많은 남자를 선호하는 것일까요? 트리버스가 정립한 우아한 방정식은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이것에도 이의를 제기합니다. 과연 값이 쌀까요? 여성이 임신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에 단 3~4일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여성의 생리주기는 남자에게 노출되지 않습니다. 1년동안 100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은 남성이 있다면 몇 명의 여성을 임신시켰을까요? 그리고 그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요? 만일 이 남자가 한 여성과 장기적인 관계를 가지며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졌다면 비용도 쌀 뿐 아니라 임신 확율도 높을 것입니다. 반면에 100명의 남성과 관계를 맺은 여성이 있다면 분명 임신을 하였을 것이고 여러 남성들로부터 자원을 얻었을것입니다. (지금은 여성의 생리주기와 임신에 대한 이해가 있지만, 20세기 이전이었다면 어림 없었지요.) 결국 우아한 방정식은 현실과 동떨어진 답을 내놓습니다. 남성의 바람끼를 옹호하는 이 이론은 남성, 여성의 외도에 대한 실질적인 통계와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저자는 테스토스테론이 성역할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남자들이 타고난 바람둥이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일부다처제, 일부일처제, 다부다처제, 일처다부제를 선택한다고 결론내립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자들로하여금 마세라티 스포츠카를 사도록 과시욕을 부추기는 낭비의 홀몬도, 남자들을 바람피도록 만드는 악마의 홀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장은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적 특성을 발현하도록 만드는 홀몬인지를 검토합니다. 남성은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며, 무모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고, 지배하려고 드는 성격이 있다는 가정 하에 이 특성이 테스토스테론에 의한 발현인지를 검토합니다.

위험을 추구하고 무모하게 도전하며 지배하려드는 남자들에게는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측정됩니다.  그렇다고해서 테스토스테론이 이러한 남성성의 발현을 주도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호수에 사는 시클리드(Cichlid)종의 한 물고기의 예를 듭니다. 특정 지역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수컷 물고기는 밝고 화려한 색을 띕니다. 그에 반해 외소하고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수컷은 보잘것 없습니다. 둘은 같은 종이지만 다른 종처럼 보일 지경이죠. 이 두 마리의 몸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해보면 화려하고 힘 쎈 수컷이 월등히 많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보입니다. 생물학자는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약하고 보잘것 없는 수컷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하면 이 녀석은 화려한 놈을 물리치고 영역을 지배하는 종이 될까요? 실험을 해보았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약한 놈은 약할 뿐이었죠. 그럼 화려하고 센놈을 거세해버리면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힘의 위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생물학자는 다시 실험합니다. 힘센놈을 다른 어항에 넣고 약한놈들만 있는 어항을 만듭니다. 그러면 약한 놈들 중 제일 센놈의 색이 선명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높아집니다. 다시말하자면 테스토스테론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중의 하나입니다. 시클리드 물고기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높은 지위가 가져다주는 결과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것이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은 하는 남자보다는 위험하고 모험을 추구하는 금융 투자에 종사하는 남성의 몸에서 더 높은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됩니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출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것입니다.

저자는 풍부한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성이 발현되는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환경에 따라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홀몬이 분비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스트레스와 도박을 추구하는 환경을 벗어나면 수치는 낮아집니다. 더군다나 그 수치에는 개인차가 너무 커서 같은 환경 안에서도 개인에 따라 수치가 다르게 나오며,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나온다고 지배적인 남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러한 경향성을 보일 뿐이지요. 환경에 따른 적응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한 설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에서저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남성성 발현과 그에 따른 성차별의 원인이 테스토스테론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까요? 답은 생활 속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변화로 나타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장난감 진열에서 성차별을 없애는 법안이 통과됩니다. 남자와 여자의 장난감 진열대, 진열 통로, 색깔, 장난감의 종류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남아 여아로 나뉘어 판매되며,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남아 여아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인 양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지며 남성성과 여성성을 내면화시키게 됩니다. 이 현상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입니다. 장난감 회사는 인간의 본성에 반대되는 법안이고, 그것이 자기들의 매출을 떨어뜨린다고 반발합니다.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 법안 하나가 이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냐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큰 변화는 작은 변화들의 누적이라고. 그런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저는 저자의 의견에 백번 동의합니다. 이 세상에 산소가 가득한 것은 바다에서 진화한 작은 녹조류가 조금씩 이산화탄소를 광합성을 통해 산소로 바꾸어 온 결과입니다. 그 변화가 일억년이 쌓이면 지구는 산소로 가득찹니다. 인간들의 사회는 훨씬 변화가 빠릅니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사람들은 단 몇 십년만에 혁명을 이루어냅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80년대에는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지요? 담배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여 규칙을 만들면 금새 세상은 해로운 담배연기를 공공장소에서 축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코델리아 파인의 이 책을 통해 그 변화에 대한 일말의 의심조차 사라졌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만 그 변화를 사람들이 감지하기에는 느릴뿐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분석을 해내는 저자의 노력이 없으면 이 사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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